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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洞)부 탐방] 해망령엔 처연한 가을 바람만
작성자 : 김영민
등록일 : 21-10-22 17:21
조회 : 50

[사진 설명]
1) 군산 개항 당시 수덕산 전경(ⓒ 조종안)
2) 해망령에서 내려다본 군산해양경찰서와 군산서초등학교, 그리고 군산창길
3) 수덕공원에서 본 군산해양경찰서(왼쪽)와 해망령
4) 해망로 도선장사거리에서 본 군산창길
5) 한국전력공사 군산지사에서 본 수덕산. 지금은 깎인 구릉에 지나지 않지만 과거에는 이곳까지 이른 '산'이었다.

  금강 하구를 바라보며, 장계산과 월명산이 감싸고 있는 산기슭에 조성되어 있는 '월명공원'은 오늘날 군산 시민의 사랑을 받는 휴식 공간이자 자랑거리입니다. 시 중심에 자리 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 아름다운 지형, 지세를 지니고 있고 주변 경치와도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산책로도 잘 정비되어 있어 접근이 용이한 '근린 공원'입니다.

  그러나 이 곳은 '공원' 이상인 곳입니다. 특히, 현재의 군산 해양 경찰서 서쪽의 전망대가 있는 대사산(大師山)과 그 북단 해망령 아래 금동, 영화동 등지는 오랜 역사가 켜켜이 배어 있는 공간, 원도심의 원도심입니다. 군산 동(洞)부의 모태인 군산진과 군산창이 자리했던 곳입니다.

  수덕산의 남측 능선에는 1408년(태종 8년) 옥구현의 수영(水營)이 무안 대굴포로 옮긴 이후 군산 지역의 해상 방어와 조운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늦어도 1426년(세종 8년)에 현의 북쪽, 진포에 설치한 수군진이 있던 곳입니다.

  설치 당시 기록[『세종 실록 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군산 조(條), 1426년]에 따르면, 군산진에는 중선 4척, 별선 4척 등 전선 8척에 수군 461명이 상주하고 있었습니다. 진군과 가족 포함 500~1,000여 명이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편, 오늘날 군산서초등학교와 군산해양경찰서 자리에는 1487년(성종 18) 용안 득성창의 기능을 일부 나누어 맡기 위해 설치, 1895년(고종 32년) 조선 왕조의 몰락과 함께 폐지될 때까지 400여 년 존립한 조창, 군산창이 있었습니다.

  군산창은 1512년(중종 7년)년 용안 득성창의 기능을 모두 옮겨 받고, 법성포에서 수납하던 흥덕·고부·정읍·부안 등의 조세마저 수납하는 호남 지역 조운 창고로 바뀌었습니다. 그리하여 군산창 주변의 용안·전주·임실·남원·임피·김제·장수·금구·운봉·익산·만경·여산·금산·진산·태인·옥구·진안·고산·무주·함열 등 덕성창이 원래 관할하던 고을과 새로 법성포창에서 이관한 흥덕·부안·고부·정읍 등 24개 고을의 세곡을 수납, 보관하였다가 서울의 경창(京倉)으로 조운하는 큰 조창이 되었습니다.

  『속대전(續大典)』(1746년, 영조 22년) 기록에 의하면 “군산창에는 조함이 18척 조군이 816명이라고” 적고 있어 조군에 포함된 가족과 하급 관리 등 여타 인구와 일반 백성의 숫자까지 합하면 적어도 1,000~2,000여 명이 거주하는 해창이었습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1899년 군산항 개항 이후 '각국' 외국인의 체류를 위해 설치된 치외 법권 지역인 '각국 거류지'가 들어선 것도 이곳입니다. 한일 병합과 함께 1910년 10월 1일에는 신설된 군산부(群山府)에 편입, 영화동은 전주통(全州通) 대화정(大和町), 금동은 금정(錦町)으로 편제되었습니다.

  발길 따라 '월명공원'에 올랐습니다. 해망령 전망대에서 원도심을 내려다보니, 그 곳에 배어 있는 역사의 숨결에 코끝이 찡합니다. 가슴이 뻥 뚫린 듯 아려옵니다.

  늦가을 처연한 가을 바람만 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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